생각이 너무많은 서른살 에게 -김윤주, 그리고 나의 이야기

2021. 7. 26. 06:57Bookstory

질풍노도의 20대를 건너,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서, 앞으로의 구상으로 머리가 복잡할 30대의 뒷발모습이라곤 잘 상상이 안가는 삽화. 30대의 발뒤끔치라고 하기보단 20대의 발뒤끔치 같은 느낌... (편집디자이너님, 죄송~~ ^^)
김윤주 작가

내가 즐겨듣는 김미경 티비에서 소개된 책중 하나인, '생각이 너무많은 서른살에게'. 

물론 나는 서른살은 훌쩍 넘었고, 40도 훌쩍넘은, 이 책의 제목에서 보이듯, 이 책을 읽어야할 독자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장 찾아 읽은 이유는, 나와 거의 같은 동년배로, 미국에서 저렇게 보란듯한 자리까지 올라간 워킹맘이 쓴 책이라는데에서 내 손길이 멈춰지질 않았다.

다 읽고난 후의 감상은,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아닌부분도 있지만, 물론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이 훨씬 많긴 많다.) 정말 오랜만에, 너무나도 오랜만에, 나와 (아주 조금 이지만) 비슷한 분야에서 종사는 좋은 친구 하나를 가슴깊게 만나고 돌아온듯한 느낌이다. 

어찌어찌 미국에 상경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자존감이 무너지는듯한 그런 하루하루의 미국생활 일상을 보내며, 좌절도 하고, 극복도 하고, 상처도 나보고, 따뜻하게 위로도 받으며 정말 많은 인생공부를 하게된 이민자로서의 삶을 허심탄외하게, 그리고 거기다 일하는 분야도 비슷해서 (비슷하다면 하고, 아니다면 아닌.....) 그런 친구 하나 만났으면 좋겠다 싶었던 생활에, 비록 지면이였지만, 그런 친구를 만나, 수다도 떨고, 낄낄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기도 하고 눈물이 핑 돌기도 하면서, 재밌게 읽었던 책이였다.

 

*나도 그랬는데^^

영어에 대한 에피소드,,, 그 누근들 없었을쏘냐.

미국친구에게 한국에 방문하고 돌아오는길에 맛있는 스넥을 선물로 갖고 오겠노라 이멜을 보냈는데,  Snack을 Snake 으로 썼다는 이야기. 매주 월요일이면 주말에 뭘했는지 꼭 물어보는 미국사람들. 한번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답할 꺼리를 들고 가서, 어김없이 물어보는 질문에 자신있게 "어, 교회(church)갔었어." 대답 했더니, 종교가 뭐냐, 어디에 있는거냐는 질문엔 딱 막혀버리고 말았고, 결국은 "I don't know", "I don't know" 라고 했다고. 새로 들어갈 집의 덕트(duct) 청소는 언제 하는게 좋은지, 이사전에 하는지, 이사 후에 하는지를 물었더니, 답을 '잡은후에 즉시 해' 라고 받았다고 했다. duct 를 duck으로 잘못써 보낸것.  이대목에선 소리죽여 웃느라, 정말 오랜만에, 내 app 근육을 맘껏 썼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책은 읽고 싶은데, 몸이 침대에 붙어 안떨어지길래, 누운채로 폰 앱을켜 읽고 있었다. 남편은 아직 자고 있어서, 소리내서 웃을수가 없었다.) 나에게도 영어 애피소드가 넘치고 흐르지만, 그중 몇가지.

처음 미국에 어학연수를 하기위해 버팔로 주립대학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시작 했던 때였다. 대학 캠퍼스안에, CVS있었는데, 들어가서 잠깐 학용품 몇가지를 사고 나오는 계산대에서, 영수증을 달라고 말했다. "Can I have receipt?" 했다. 그런데 케쉬어는 내 말을 정말끝까지 못알아 들으면서 뭘 달라고? 레서피? 리핏? 뭐? 계속 몇번을 물어보는것이였다. 쪽이 팔리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했던 나는 결국, 계산대에서 나오는 줄줄이 종이를 가르치면서 리시트! 리스티! 했더니, 그제서야,,, 아~~ 리싯! 그러더라는, 아니, 발음을 못알아 들었다고 쳐도, 어떻게 내가 계산대에서 조리방법을 달라고 했을꺼란 상상을 했단말인가? 리핏을 해달라고 했을것이란 생각을 했단말인가? 그 융통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케시어에게 완전 감정쓰레기같은 표정을 한껏 지어보이며 신경질적으로 대하며 나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신경질을 내고 나올필요도 없었던 상황이였는데, 많이 미안해 지네,,, ㅎㅎ) 또 한번은, 대학을 졸업하고, 룸메이트 언니와 살때였다. 언니의 친구와 셋이서 아침을 먹으러 다이너에 간적이 있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아니, 방비 상태에서라도, 돌발상황, 아니 안돌발 상황이라 해도 아뭏든 영어가 한창 공포스러울 때였는데, 웨이트레스가 드디어 우리의 주문을 받으러 왔고, 내 차례가 되었다. "How would you like your egg?" 이말을,, 그녀는 수천번도 더 해본말일테니, 얼마나 속사포로 했겠는가.

그리고 그 속사포같은 영어를 내가 제대로  알아들을일은 만무 했다. 내 대답은 'I don't want it" 이였다. 옆에 있던 룸메이트 언니의 날카로운 째림으로 '우씨 뭐야, 계란 어떻게 해줄까 물어보는데, 뭐가 아돈원잇이야?;하는 질책에,, 아!! 해놓고 또 그다음이 문제였다. 내가 젤 좋아하는 후라이 인데 노른자가 안터지며  다 안익고, 살짝익힌 그 애그 (over easy)가 먹고 싶었으나, 설명하기도 힘들고, 그걸 뭐라 했더랬는지 기억도 잘 안나, 세상쉬운 스크램블 플리즈! 로 했던 기억.   

 

유학생 신분으로는 어찌어찌 회사나, 다른 기관에 가서 여름 job을 찾았다 해도, 일을 할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돈을 버는 행위를 하면 안돼는것. 하지만, 저자는 켐퍼스 내에서 일할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도 미국에서 학부때 편입해 NYIT를 다니고 있을때, 이것저것 캠퍼스 안에서 일자리 찾아보는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저자처럼 전공에 관련된 일은 아니였지만, 교내에 있었던 International office 에 찾아가 '난 캠퍼스 안에서 뭔가 일할수 있는거 찾고 있는데, 혹시 사람이 필요한 오피스가 있을까?' 하고 물어봤더니, 공고가 뜨면 알려주겠다고, 내 인포를 적어놓고 가게 했었다. 그것만으로도 맘이 안놓여서, 혹시 하고 캠퍼스 안의 도서관으로 찾아가, 혹시 사람이 필요하다면 연락달라고, 이름과 전화번호 이멜같은것을 남겨놓고 왔었다. 그렇게 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캠퍼스 안에서 했었다.  Note taker 라고 노트필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업에서 교수님이 칠판에 열심히도 적은 노트를 하나도 안빼놓고 필사해서 교수님께 제출하면, 교수님은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카피본을 나눠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 노트필기 하는 일을 하면, 2학점에 해당하는 수업료를 면제해줬었다, 컴퓨터 수업중엔 TA라는 자리도 필요한데, (교수님이 온갖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줄줄줄 설명하고나서 각자 자기의 작업을 해보는데, 당연 '어, 그다음엔 뭐 하라고? 그 버튼이 어디있다고?'하는 질문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몸이 한개인 교수님이 그걸 다 커버하기엔 역부족이니, 수업마다 TA가 배치되어 그런 교수의 손을 돕는다. TA자라는 한번도 놓치지 않고 계속 했었더.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고, 반납하면 받아주고, request되어있는게 있으면 찾아놓고, 하는 일도 했었다. 도선관일을 할때, 고용계약서? 같은것에 서명을 하는데, '최저임금이 $5.5이라 더는 못주는데 괜찮겠니?'라고 물었다. 아니, 안괜찮을리 없지!! 감지 덕지지! 한국에선 아무리 최상의 일반 알바를 구해도 시간당 1800원 할때였고, 환전하면 IMF라, 거의 만원짜리 알바였다. 시간당. 이런 꿀알바 급여를 놓고, '괜찮겠니'라니,,, 오,, 전 감사할 따름 이죠!! ㅎ 하며 즐겁게 싸인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나를 관리? 하던 라이브러리언 이름이,  'Christina'였던걸로 기억 하는데,, 가물가물 하다. 그때는 정신없어 잘 몰랐는데,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영어도 '에떼떼' 했던 나에게 항상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었던 사람들. 런치로 샌드위치를 사다주며, 먹으라고 했던 라이브러리언도 있었고, 자기 안입는데, 너 주고 싶은데, 입을래? 하면서 주름치마를 들고와서 주고 갔던 라이브러리언도 있었다ㅎ. 라이브러리 관장이였던 여자는, 일하고 있던 여러명의 학생들, 사실 한둘이 아녔는데, 크리스마스면, 마이크로 웨이브 팝콩한봉지와 5불짜리 넷플렉스 기프트가드한장을 이쁘게 포장해 라이브러리에서 일하던 학생들에게 나눠주곤 했었다.

*공감 100% 

저자도, 힘든 영어실력이지만, 오히려 입학전 몇 학교의 교수들을 찾아가, 본인을 좀 뽑아 달라고 면담을 요구 하는데, 실제로 그중 한곳에서 저자를 뽑았고. 입학하려는 와중에 IMF가 터져, 학비가 부담스러워 지자, 학교에 찾아가 장학금을 요구 했고, 실제로 수령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부분에서 나도 IMF를 미국유학 초기시절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서,, '아, 정말 그랬지. 아, 이럴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나도 그때, 한국에선 하루하루 암울한 뉴스들이 미국에 매일매일 들려오고, 환율이 너무 뛰어 부모님도 엄청 겁이 나셨을 때였는데, 하루는 도서관에 여느날처럼 일하러 갔더니, 사서 한분이 나에게 프린트물을 하나 건내 주면서, 빨리 신청을 하라고 했다. 읽어보니, 한국, 인도네시아, 등등의 여러 Asia나라가 IMF로 상황이 어려워 졌으니, 켐퍼스 안에서 일하고 있는 학생들에 한해, 그들이 일년동안 캠퍼스에서 일하며 버는 돈 만큼의 액수를 매치시켜 Asian Help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돈을 빌려주겠다는 공고였다. 상환 요건은 없었고, 기간도 없었다. 이자도 물론 없었고, 제약이라곤, '네가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갚아도 됀다'는 조건 이였다. 당시 조그만 미국 은행에 다니고 있던 삼촌말씀은, 이렇게 무이자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경우가 미국엔 없다며, 당장 신청하라고 했고, 그렇게 해서 4천불 정도를 받았다. (한학기 투이션을 이돈으로 냈던 기억이 난다. ) 졸업후, 일을시작하며 조금씩갚아, 2천불을 갚았고, 형편이 좀 나아져 한번에 일시불로 끝내버려야 겠다 생각했는데, 더이상 이 비영리단체는 존속하지 않고, 이메일이나 연락도 두절이 되어버렸다. 그 당시에는 너무도 어리버리했고, 여러 일들이 일어났던 시기여서 깊이 생각을 못했으나, 지금 되돌아보니, 선진국이라는 이름표를 그냥 다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서슴없이 뻗어주는 사회, 그리고 그런사회의 질은 역시나 경제적으로나, 국민들이 갖는 common cense라는것의 수준이 어느정도 셋업이 되어 있어야 하는거란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사람 사는곳은 다 똑같아서, 어느사회이던 선과 악은 공존하고 인간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실망시키거나, 감동시키는 일은 어디에서든 일어난다. 하지만 또 그것을 선한쪽으로, 인간적으로 잘 해결해 나아갈줄 아는 방법이 잘 셋업된곳도 선진국이라고 할수 있겠다.)

저자가 겪었던 '말도 안돼,,, 그럴수가 있을까? 하는 상황이 미국에선 정말 (20년전) 많이도 있었고, 그 와중에 저자는 정말 배포도 그런 배포가 있을수 있나 싶게 미국생활을 잘도 헤쳐 나간듯 하다. (사실, 상싱적으로, 영어도 딸려, 돈도 없어,,,, 그런데 거기다 대고 '나좀 뽑아줘', '장학금좀 줘' 하는 말을 할수 있는 배포는 글쎄,,과연 혼자 오롯이 생각해 낼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그런 방법이 있다고(그리고 정말로, 교수들을 찾아가 사정을 해보란 조언은 한국에서 와있던 선배가 해주었다고 했다) 가르쳐주고, 해보라고 말해주지 않은이상, 절대로 혼자서 생각할수 없었던 부분일것 같다.

예전에, 류태영(건국대 교수)님의 책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국민일보 출판부, 2000)"라는 책을 정말 감동깊게 읽었던 적이 있었다. 교수님의 삶 자체가 티슈박스 한박스는 옆에 끼고 웃음보따리는 몇개 옆에 차고 들어야할 이야기들로 가득한데, 특유의 입담도 상급 이시라, 정신없이 한동안 교수님의 책과 강연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분의 여러 일화중 몇가지, 정말 김윤주 작가의 생각처럼 '아님 말고, 우선은 부딫혀 보는거야' 정신이 이분께도 원류처럼 흐르고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 안될지도 모르는, 그리고 안될 확률도 너무 높은 일을, 우선을 저질러 보겠다는 건지,,ㅎㅎ 류박사님은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한국의 농촌을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할수 있을까를 온몸으로 고민 하다가, 류달영 박사의 '새 역사를 위하려'라는 책을 일고, 덴마크의 농업국가 성공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연고도 없고, 갈수있는 방법도 없었던 그때당시, 생각해낸방법. 당시 덴마크의 국왕이였던 프레드릭9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실제로 보낸다. 왕궁의 주소도 몰랐지만, 편지가 덴마크까지 가면, 덴마크의 우편배달부는 국왕에게 전달할 방법을 알겠지 하는 마음에. 기적처럼 답장이 돌아왔고, '당신이 원하는곳에서 원하는만큼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수 있게 우리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라는 답장을 받고 실제 덴마크로 떠난다. 이 얼마나 기가차고 황당한 일인가?

난 그때까지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을꺼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 이였다. 이분의 글을 읽고 나서야, 정말 가슴깊이, 내가 무언가를 직접 행동에 옮겨보기 전에는 아무것오 알수 있는게 없다는걸 절실히 깨달았었는데, 김윤주 저자도 그런 경험을 했던 것이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진심을 통해 마음을 전달한다면, 그 어느것도 전달 못할것이 없다는것. 류박사님은 너무나도 절실하게, 한국의 낙후된 농업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덴마크처럼 훌륭한 농업선진국으로 갈수있는 방법을 알고싶다고 간절히 편지를 쓴것. 그것도 문법도 어눌하고, 잘 이어지지도 않는 영문 편지로!

김윤주 작가도 그런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특히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우리같은 사람에겐, 자신만의 고유한 나만의 스토리가 있을때, 부족한 영어로도 얼마든지 나를 알릴수 있고, 인간대 인간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 하다고. 

내가 다니던 NYIT의 Old Westbury Campus에는 De Seversky Mansion이다. (https://www.nyit.edu/deseversky/gallery)에서 퍼옴.  '우선 해봐, 안돼면 말고'법칙이 적용된 이야기가 담겨진 장소. 그당시,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니던 한국 유학생들중, 한 커플이 만나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었다. 신랑이였던 학생이, 학교에 건의를 했다. '우리가 저 맨션에서 결혼할수있게 좀 지원해줄수 없겠냐. 우린 유학생이라, 돈도 별로 없는데, NYIT campus 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된 NYIT 학생이다. 학교에서 학문도 닦고, 새 가정도 이뤄 출발을 하는건데, 우리를 좀 도와줄수 없겠냐'고 건의 했었고, 학교측에서는 ok! 해주겠다 승락했다. 결혼비용에 드는 꽃, 음식, 술 모두 공짜로 제공하고, (하객수는 제한이 있었겠지 싶다. 무한정 들어갈수 없는 장소니. 무한정 들어갈수도 없었다. 유학생들이라, 식구가 여기 많은것도 아니였고.) 대신 기사를 맘대로 쓸수 있도록, 모든 사진을 학교측이 사용할수 있도록 허용 한다는 조건. 아무리 안들어도 2~3만불 정도 드는 결혼식 장소였다.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당시에는 너무 놀랐는데, 정말 '안돼면 말고!'정신은, 꼭 잊지말고 지니고 살아야할 인생팁이 아닌가 싶다 ㅎ

 

아이를 낳고 나면 엄마는 하나부터 열까지의 모든 촉수가 다 아이에게 쏠려 있다. 어떻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키울지가 빼곡히 머릿속에 엉켜 있것만, 사실 내 남편은 육아와 살림을  참 많이 거들어 주었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모든게 그렇게 쉽게 굴러가지는 않았다.  '거들어 준다'는 말이 맞지, 분담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신랑도 별로 못하고 있었던듯 하다. 그건 본인도 동의 했었다. 10년이 훌쩍넘은 지금은 알아서도 이것저것 집안일을 잘 해 주지만. 나는 머릿속이 온통 아이들 관련일로 꽉차 있었다. 예를들자면, 밥을 먹으면서는 한3숫갈 이후부턴 먹는거에 흥미를 잃기 때문에 그 전에 먹여야할 야채며 고기를 충분히 먹여야 해서 애가 먹는 한술한술에 정신이 완전 집중 되어 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만 먹고는 밥상을 일어서는 경우도 허다 해서)  본인은 아직도, 영화, 스포츠, 정치, 문화 등등, 그런데 관심도 많아, 내개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느낌을 정리해서 말로 표현해 건내줄 여력도 없었고, 나한테는 지금 당장 귀에 들어오지 않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로만 받아들여졌다. 난 이밥상을 빨리 먹고 치워야 몇시까지 정리하고 잘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 가득한 와중이라. 이런내가 참 이기적이고 못된사람인가보다 하고 자책을 하곤 했었는데, 오,,, 아니였다. 이 작가도 그이야길 한다. 아이낳은 엄마의 모든 촉수는 아이에게 가있는데, 신랑은 아이를 낳고도 낳기 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어 보인다는 말. 예전처럼 뉴스를 보고, 스포츠 중계를 즐기며, 정치이 이야기에 흥분을 하는것 등등이 너무 불공평해 보였다는 이분의 말에,,, 나도 완전 백퍼 공감이 갔다. 

 

*공감할수 없는 부분

첫번째, 대학원을 진학할지 다른회사로 이직을 할지 고민하는 후배에게, 둘 다 해보라고 조언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는데, 나는 정말 공감이 안가도 너무 안가는 점이다. 얼마전 비슷한 카테고리의 책, 나를 믿고 일한다는것-우미영 의 책을 읽고도 느낀 것이지만, 이직을 한다는것, 새로운 자리를 찾아본다는것이 요즘처럼 플렛폼이 이렇게 잘 발달된 시기에도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또 그렇게 어렵고 험란하다가도 아주 쉽게 좋은 자리를 찾아 옮길수 있는 기회도 로또처럼 찾아오는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본인들이 겪어봐서 더잘알텐데, 말은 너무 쉽게 하는것같아, 콧방귀가 켜질라는걸 애써 참고 읽어 보았다. 

이곳에서 직장다니며 살림하며 아이까지 키우는데, 그럴시간이 허락한단 말인가? 우선 코로나 이후부터는 생활패턴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맞벌이 부부의 두아이 육아하며 지냈던 우리 하루 일과는 대충 이렇다. 

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5시 칼퇴근 하고 집에 온다. 집 도착하는시간 겨우겨우 6시. 바로 집 코앞의 학교에 6시까지 애프터케어가 문을 열기에 그시간에 안에 아이를 데리고 와야한다.  집에 와도 할일은 항상 산더미다. 아이들, 우리 부부가 아침에 먹고간 설겆이가 우선 싱크대에서 산을 이루고 있고, 네식구가 들고 나갔던 도시락이나 스넥통, 물병, 커피병등등의 설겆이가 그 위어 더해진다. 

식기세척기 안엔 그 전날 돌리고 남겨진 그릇이 아직 비키지 않고 자릴 차지하고 있는상태. 싱크대가 한산인데 거기에 저녁밥을 짓겠다고, 이거저거 다 꺼내서, 해동하고, 밥짓고, 가스불 켜고 난리는 시작된다.

거기에 아이들, 치어나 걸스카웃, 댄스, 싸커 기타등등의 엑티비티가 있는날이면, 잠깐 드랍을 해주는 스페니시 아줌마의 도움으로 나가있던 아이들을 픽업해 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렇게 애들 데려오고, 밥해먹이고, 숙제 봐주고, 학교갈것 챙기고, 저녁상 치우고, 다음날 챙겨갈 점심이나 스넥 챙기고, 아이들 씻기고, 목숨처럼 여기는 내 운동시간 30분 낑겨넣고, 침대에 내 몸뚱이를 겨우 뉘일수 있는 시간은 12시 30분. 이시간에 30분이라도 앉아서 뭘 하라고?

그렇게 하다가, 나는 병을 얻었다. 자율신경계장애와 만성피로증후근. 사람은 정말 다 각각의 애너지레벨을 갖고 있다. 남들이 4:30에 일어나서 미라클 모닝을 경험해 본다고 요즘 유투브마다 난리도 아니고, 책도 무지 많이 팔리고 한다지만, 그걸 절대 할수없는 체력을 갖은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내 몸이 그렇다. 그렇게 12:30까지 쉴새없이 뺑뺑이를 치고 다음날이면 늦어도 6:30에 일어나서 애들챙겨 운전해 회사까지 가는 생활을 몇년을 하고 났더니, 그냥 이유없는 어지러움. 출근하며 운전하는 중에도 쏟아지는 잠, 회사에 가면, 눈을 뜨고 앉아 있을수가 없을정도로 어지럽고 메스껍고 이유없이 아침부터 토하기도 하고, 그냥 땅을 밟고 걸어다니는것조차, 뇌가 흔들릴정도로 어지럽고 힘들어서, 무슨 80넘은 할머니처럼 살살살살 걸어다니기도 하고, 어떤날은 아침에 눈을 뜰수 없을정도로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서 회사를 몇시간씩 늦게 출근 하기고 하곤 했다.(참, 이렇게 일하고도 짤리지 않은게 다행이였다고 해야 할른지,) 그러다 겨우겨우 조금 기운을 차리는 때에 그때 하고싶은걸좀 하거나, 읽고싶은 책을 좀 읽거나 했었는데, 그래봤자, 하루에 30분을 내시간으로 만드는게 얼마나 처절할정도로 힘든 일인지.

작가 본인도 겪어봐서 알텐데, 어쩜 이런말을 이렇게 쉽게 할까 싶다.

대학원도 지원하고, 이직도 준비 하라고? Linkedin에서 구직자리를 써치며 내 경력에 맞는자리인지를 찾아보느것도 15-20분은 걸린다. 

그런거 찾았다고 그냥 막 이력서 넣으면 다 되는줄 아나? 구직 자리에서 말하고 있는 포인트와 내 이력서가 어느정도 매칭이 될수 있도록 다시 내 레주메를 고치는 작업, 그리고 내 업종에선 그들이 보여달라는 스타일의 포트폴리오도 첨부해 보내거나, 맞는 링크를 보내주거나 해야하는 작업도 있다. 그런것들을 안하고 그냥 계속 이력서를 넣는건, 물빠진독에 물붓는거고 시간낭비일 뿐이다. )저자는 '너가 그 회사에 맞는지 안맞는지는 회사가 판단할 일이지 네가 판단할일이 아니다'라고는 하지만, 그건 여타 다른조건이 완충되었을때의 이야기. 어떻게 생뚱맞게 이런일 하다 저런일하는 자리로 옮기려는데, '준비가 안돼었어도 해라' '준비가 다 되었다는 싯점은 없다'라고 말하는데, 오,, 노노.

웹싸이트를 만들던 사람이, 영상디자인자리로 이직하려면, 당연히 그에맞는 포트폴리오를 보여줘야 하는게 당연사고, 그런거 준비하는데, 얼마라 시간이 많이 드는데,,, 그걸 그냥 다 해보라고,,, ?) 나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고 나서도 몇가지 순서가 더 있다. 그 회사의 구직글을 다시 저장해 놓고, 그때 보냈던 레주메와 커버레터도 따로 홀더 만들어 다시 잘 저장해 둔다. (그래야 연락이 왔을때 대화가 쉬워진다. 워낙 여기저기 많이 넣고 나면, 나중에 그중 한곳에서 연락이 온다해도, 어떤회사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그런 상황에선 그들이 원하는 일의 이야기를 포인트에 맞게 이야기 할수가 없을수도 있기때문이다.) 이런과정을 해나가는데에 적어도 한시간은 든다. 이렇게 해도 겨우겨우 만든 하루 30분의 내 시간을 다쓰고도 오버한 경우인데, 거이에 또 대학원을 알아보고 어플라이를 하라고? 대학원은 그냥 넣나? 원하는 과, 학교, 뭘 배우는지 등등, 써치할게 얼마나 많고, 시험을 보기로 했으면, 그에 준하는 시험성적을 내야 하니 공부해야할것도 있는데, 그걸 그렇게 쉽게 "같이 다 병행 하세요' 라니,,ㅋ

이렇게 말할수 있는 이유는 아마 두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루에 한 3시간만 자도 될만큼 자신의 체력이 단디한데, 모든 사람들이 그럴꺼라 예상하는것.

두번째 이유는 어찌어찌 본인은 자신의 시간을 많이 낼수있는 환경인데, 모든사람들이 자기처럼 하루 24시간을 쓸수 있을거란 생각?

요즘 자기개발에대해 열심히 강의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책을 읽으라고 닥달하는 사람들, 공부하라고 닥달하는 사람들, 자기 개발 하라고 닥달하는 사람들....

그래, 다 자기개발 하고싶고, 내 몸값 올리고 싶고, 그래서 내 인생의 질 올리고 싶지! 누구나! 하지만, 하루에 겨우 30분 내시간으로 만들수 있는 사람이, 그 시간을 피곤에 쩐 내몸에 휴식을 주는 시간으로 할애 해야 할지, 그시간에 졸꾸하며 나를 성장시킬수 있는무엇엔가 투자 할지, 아니면, 하루종일 엄마랑 떨어져 그나마도 엄마와의 시간이 너무너무 갈망되고 있는 아이와 시간을 보낼지, 이제 막 수학이 어려워저 가는 아이의 수학공부를 도와줄지, 아니면 쪄그려드는 내몸을 위해 그 30분을 운동을 더 하는데 쓸지, 아니면 정신없이 물건이 쌓이고 난장판된 부엌을 치울지, 그 30분을 갖고도 그렇게 많은것들과 비교하며 그시간을 어디에 써야할지를 두고 치열하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거 두가지 다하세요, 실해하면, 또 해보는거예요, 안해보면 그냥 그게 확룰 0인거고 해보고 안돼면, 그 0이였던 확률을 1이라도 올리는거예요,' 어쩜 이렇게 쉽게 말할수 이단 말인가!

 

내면을 단단하게 해라. 그래야 회사에서도 기죽지 않는다!?

홍춘욱 박사님이 최근에 출판한 '돈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는 책을 설명한 영상이 있었다.

홍박사님 말씀은 '개인이 어느정도 힘을 갖고 있다면(경제적으로) 회사에서도 당당할수 있다'는 논제. 싸이코패스 기질을 갖은 상사에게 항상 두드려 맞으면서도 그 직장을 떠날수가 없었던 이유는 본인에게 딸린, 친정, 처, 가족때문 이였다고 한다, 본인의 경제활동이 멈추는 순간 자신에게 기대였던 모든 사람들의 경제가 흔들리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만나 하루하루가 지옥이였던 회사를 떠날수 없었고, 그래서 병도 얻고, 공황장애도 겪었다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그런 귀신 씨낱알 까먹는 소리는 제발 짚어 치워 달라고 호소 하시는 모습을 봤는데, 나도 너무 공감했다. 나도 정말 한치의 비전도 안보이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걸 하고싶다고 남편에게 이야기 했더니,, 하는말,' 그래, 그럼 우린 이집 팔고 아파트로 가자!' ㅋㅋㅋ 였다. 

반면 이작가는, 내면을 단단히 해야 그런 싸이코 상사에게도 버틸수 있고, 힘든 직장생활도 버틸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것. 과연 그럴까?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내면을 단단하게 하면, 언제든 나를 자를수 있는 회사, 상사에 대해 담대해 질수 있을까? 

두사람말이 다 맞겠지만, 아마도 두사람이 맞이했던 상황은 좀 달랐던거 아니였나 싶다.

 

*그 와중에도 꼭 노트하고 넘어가고 싶은것.

 -지금보다도 더 주기적으로 나의 레쥬메와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 할것

 -별로 달라지지 않은 정체된듯한 커리어에 매어있는 느낌이라면, 나만의 스토리가 엮여갈수있는 컨텐츠를 꼭 계발해 놓을것.

   즉, 나는 나만의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것인지 생각할것 그리고 행동할것.

 -내가 왜 이 일을 좋아하고, 내가 추구하는것이 무엇인지 더더욱 명확히 세워 놓을것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꾸준히 하겠다는 생각을 할것.

 -나를 꾸준히 노출 시킬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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