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너무 아까운 요즘/큰아이 교정/두 아이 생일 Oct. 2021

2021. 11. 22. 01:18Parenting

초등학교 입학하기전의 내모습. 이빨이 아직 유치인걸 보니, 6살? 때쯤이 아닐까 싶다. 한겨울에도 긴 치마원피스 입는걸 너무 좋아했던나. (가끔 여름 원피스를 입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었고, 한국말로 '고리땡'이 다 낡아 조직이 숭숭 떨어져나간 Corduroy 코도로이-한국말로 코르덴, 핑크 원피스를 기어이 입겠다고 하도 떼를 써서 엄마한테 정말 된통 혼난적도 있었다.ㅎㅎ  - 그때 알았다, Corduroy fabric은 오래입고, 많이 빨면, 그 고르덴 조직이 다 빠져 나가면서 직물이 어떻게 헐어버리는지. 엄마가 코앞에 들이밀으며 얼마나 낡았는지를 보여 주셨었다.ㅎㅎㅎ 

*내가 그렸던 나의 모습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었을까?
내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런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기억이란게 머릿속에 남겨지기 시작했을때 무렵부터, 초등학교 입학하기전, 아주아주 추운 겨울날의 모습이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창밖은 꽁꽁 얼어 매서운데, 보리차 주전자가 뜨거운 수중기를 뽈뽈 내뿝고있는 집안에 앉아 뜨게질 이였는지, 크로쉐 이였는지를 열심히도 하던 엄마곁에 아주 무료하게 드러누어 있곤 했었다. ‘여성살롱’인지,, 기억도 가물한 라디오 방송을 엄마과 함께 나눠들으며 무슨말을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고 더더욱, 무엇이 재밌는 부분인지도 모르고, 낄낄대는 아나운서와 같이 가끔 웃음을 뱃기도 하던 엄마옆에서 이제나, 저제나 좀 기다리면 엄마가 나랑 인형 놀일 해줄까 기다렸던 내모습. 그러다 내가 너무 심심해 하는게 불쌍해 보였던지, 내주시던 귤을 이리저리 까먹기도 하고, 구워주신 쥐포를 열심히 뜯어 먹기도 했던 기억. 
느리게 그리고 무료하게 흘러가긴 했지만 그렇게 엄마곁에서 이리저리 부대끼고 따뜻한 거실풍경을 나름대로 즐겼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그림을 좋아하고, 뭔가 만들기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예술중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나도 미술에 관련된 직업이란걸 갖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화가'라는 직업만 머릿속에 떠올랐었다.

그런데 내가 미래에 갖게될 나의 아이들에게 내가 느꼈었던 엄마와의 여유롭고 따뜻한 교감 시간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었다.
이 두가지를 다 잡을수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시기 한참 사춘기였던 난 고민아닌 고민을좀 했는데, 나름 내린 결론은, ‘그래! 미술을 하더라도, 꼭 컴퓨터와 관련된 그런 일을 하는게 좋을것 같아. 아무래도 컴퓨터로 작업을 할수 있는일을 하면, 아이들이 있는곁에서 자택근무처럼 일하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도 항상 엄마가 집에 있는 기대도 할수 있고, 또 내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이뤄나갈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학교에서는 비록 순수미술을 공부 했지만, 대학에 가고, 사회 생활을 할때에는 꼭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을 해야 겠다 생각했고, 또 그렇게 하기는 했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다가와 그렇게 살아보니, 나의 계획은 그야말로 “김칫국 마신셈!” 이였다.

 

온지구를 무섭게 강타하고 지나간 코로나 19로 원격수업이 가능해 졌네, 원격 회의가 가능해 졌네 떠들곤 있지만, 어떤 운명?에선지, 이렇게 백신을 다 맞고 일상으로 복귀할수 있을무렵, 나는 다시 회사 사무실로 질질질 끌려나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remote로도 일이 충분히 돌아갔었지만, 회사에선 더이상 work from home을 허용하고싶지 않았던 거였고, 백신도 맞기 전에 회다로 다들 복귀하라는 엄명에 모두들 고개를 꼳꼳히 돌려 반항아닌 반항을 하다가, 사실 백신을 다 맞고 난 후에는, 별수 없이 다들 사무실로 되돌아 와야 했다.)

*아까운 시간
큰아이가 교정을 하다가 텀도 너무 많이 길어지고, 점점 아이도 너무 힘들어해서 선생님의 조언대로, 아랫이빨 부분의 교정기만 빼기로 결정했다.(윗니의 교정기는 계속 끼어야 하는 상태로.) 큰아이의 교정선생님과의 얽힌 사연은 뭐 구구절절이 다 남기지 않기로 하겠지만, 암튼 우리와는 케미가 맞지 않는 분이셨다는것은 분명.
요즘들어 내가 제일 아까워하는게 무얼까,, 설명없이, 얼마전 일어난 이 교정선생님과의 불화?로 알아차릴수 있는건 바로 ‘시간’이다. \

15분도 아깝지만, 그래, 그냥 15분 단위 까지  빽빽하게 내 일과스케줄을 짜진 않더라고, 30분정도는 내게 정말 보석같은 시간이고, 그래서 그런지 요즘들어 펜데믹 종결아닌 종결로 출퇴근 복귀하며 길에서 버리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되는 시간은 정말 너무너무 아까워 못참겠다.

 


지난 금요일 아래 교정기를 빼며 선생님이 하신말 “월요일에 꼭 Pick up 오셔야 해요. 자꾸 늦어지면 이빨이 다시 제멋대로 자릴 움직일수 있어요. 2시간 이상은 몰딩한게 굳을시간이 필요한데, 오늘은 늦어서 못갖어 가실거고, 월요일에 꼭 오셔서 픽업 하셔야 합니다’ 그말을 철떡같이 믿고, 난 월요일 퇴근시간을 을 단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총알처럼 빠져나와, 그 막히고 막히는 길을 이리저리 빗하면서 약속시간에 맞게 도착 했다. ‘앉아서 잠시 기다리세요’ 리셉션 아가씨의 말대로 "네!", 하고 앉아 기다리는데, 안주네,,,? 왜,, 안줄까? 안쪽에서 찾아나오는데 시간이 걸리나보다,,
하고 기다리는게, 계속 안주는거다. ‘음,,, 픽업만 해서 가면 되게 그냥 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 안줄까?’ 그냥, pick & up 하면 되는데,,?  그제서야 드는생각,  아!! 내가 아이랑 같이 왔어야 하나? 이빨에 잘 맞는지 아이가 껴봤어야 하는거였나보다,, 그제서야 생각이 들어, 아이랑 같이 왔어야 하는 거였어요? 물어보고, 간호사가 아이랑 같이 왔었아야 한다고,,, ㅡ,ㅡ;; 완전 황당!!!!  

1. 길에서 버린 시간이 너무너무 아까워 미치겠고, 2.제대로된 정보를 주지 않아서 이렇게 허탕치게 만든 의사가 세상 원망스러웠고,

3. 거기에 대고 나한테 하는 이야기가 더 황당하게 만들었다.
의사의 말은,

1.이렇게 아이없이 보호자 혼자 덜렁 픽업하러 온 경우는 저도 처음 봅니다.

2.지금 생각해보니 아이랑 같이 오셨어야 했다는걸 아셨잖아요, 그러니 내가 그렇게 이야기 했어도 당연히 알아 들으셨어야죠

3.그럼 다시 오세요, 아이랑 다음주에.
1.그런 경우가 정말 내가 처음이였다고,?? (나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예전엔 리테이너 받을때가 다음 책업때였어서, 당연히 아이가 책업받으며 리테이너 받아가게 되어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엔 경우가 좀 달랐던것. 책업은 3일전에 끝났고, 오늘 다시 오게된건 그야말로 픽업때문에 온거였으니까. (그때 그냥 갖어갈수 없고, 2시간을 기다려야 나오는거라, 다음책업때까지 기다렸다 받아가는경우가 아니고, 이것만 받으러 따로 왔었어야 하는경우여서 아마 다른사람들과는 상황이 달랐을수 있다).

2.곰곰히 생각하면 같이 와야하는걸 알잖냐고 하는데,, 나참,,, 말해준 대로만 인지하고 기억을 했지, 내가 어떻게 한두스텝 더 심사숙고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건지, 나도 픽업하러 왔는데, 그냥 주지않고 계속 기다리게 하는게 너무 이상해져서, 기다리고 앉아있다보니, 그제서야 같이 왔어야 하는건가 생각이 든거고,

3.이렇게 건성으로 알려준 사실때문에 길에서 두어시간을 그냥 버리게 된건데 정말 아무일 아니란듯 다음주에 다시 오세요, 하는게,, 정말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내 입장을 설명했다.

    선생님이 픽업하러 오라고 했지, 아이랑 같이와서 껴봐야 한다는 말씀은 안하셨다고, 선생님도 한시간 한시간이 다 스케줄 짜여있는것처      럼, 나한테도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데, 앞뒤로 다 스케줄이 짜여진거다. 난 이거 시간맞춰 픽업하려고, 내 나름대로 다른스케줄 다

    이리저리 미루고 비어서 시간내 온거다. 이렇게 허탕치고 가게 하면 어떻하냐, 선생님의 부족한 설명때문에 이렇게 된거 아니냐 하고, 

    결국, 그자리에서 마침 아이들 아빠가 집에 아이들과 있을때여서, 급히 전화를해,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고, 나는 그자리를 떠났다.

    일이 있었던건 6시 였고, 아이가 도착한 시간은 6:40정도.

    신랑도 떼러피를 가야하는 시간이였는데, 이일때문에 다시 스케줄조정하는전화를 하느라 잠시 나와있던 상태에서, 의사는 아이에게

    당연히 짜증을 내기 시작. 

    윗 교정기도 오늘 빼고 싶으면 빼고 가라!

   옛날엔 리테이너받을때 너도 같이 오지 않았었냐? - 이 질문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던 아이에게 의사는 네 기억력에 문제가

   있구나! 라고 대거리. 

    리테이너를 몇시간을 껴야 하는지,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일언반구도 없이 리테이너 껴보고 맞냐고 물어보곤 맞다고 하니까, 탁 일어

    서서 가버리더란다. 

    대. 황. 당.

 

의사도 나름 황당 했겠지. 어떤 바보같은 아줌마가, 말뜻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와선 자기한테 따지니.  저아줌마가 나한테 무슨 개인적인 감정이 있나,,, 하고. 게다가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쪽팔림을 당하고 나니.

집에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나는 왜그렇게 화가 났을까?
1.길에서 그냥 허비한 시간이 정말 너무너무 아까워서 미칠 지경 이였다. 그 2시간이면 내가 무엇무엇을 더 할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2.물론 그 이전부터 칫과선생님이 우리 케미와 맞지 않는 사람이였다는건 다 제끼고, 그렇게 건성된 인포메이션을 전달해 놓고는 사려깊에 행동하지 않은게 나인것마냥 대하는 태도가 너무 화가 났고, 내가 버린 시간을 정말 아무렇지 않은듯 "다음주에 다시오세요" 라고 툭 뱉는말에도 너무 화가 났다.

긱경제가 난무하고, 이젠 극소수의 부자들이 아니라면 다들 생산자와 소비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퇴근시간이 그리 바쁘지 않는 사람이라면, 퇴근길에 장을보며, 앱을 통해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급하게 필요한 샤핑써비스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내꺼사는길에 그 오더수락하고 사다주고 돈을 벌수도 있다. 그사람도 회사에선 일꾼으로 월급받으며 지내지만, 그 밖의 시간에선 한시간 한시간이 또다른 생산자의 모습으로 꾸려지기도 하는것이다.)
나의 사소한 버릇 한가지도 돈이될수도 있고, 또 그걸 무형자산으로 보호도 받을수 있는 시대.



다시 내가 원했던 삶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난 그렇게 아이도 잘 키우면서 일도 열심히 하는 그런삶을 꿈꾸었었는데, 한참 힘들고 재밌게 키울수 있는 시간엔, 회사에 일하러 가느라 아이를 어디에 등원시킬 준비를 하고, 내 준비를 하고, 8시간 + 1시간 =9시간을 꼭채워 회사에서 일하고, 또 길에 시간버리며 이동하는 그 시간만 합쳐 계산을 해도, 하루 10시간반 정도는 생계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시간 이다. 집근처에 도착해, 아이들을 픽업하고, 액티비티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집에와 저녁하고 치우고 또 내일을 준비하는 그런삶을 살았다.

과연 식구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다운 대화를 주중에 할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주말은 주말대로 바빴다. 주중에 못한 여러가지 볼일들을 보러 다니고, 집안청소, 주말 하루라도 해야, 일주일 에 겨우 한번 청소하고 사는셈.


그러다 팬데믹으로 어느정도 아까운 시간을 길에 버리는것을 줄일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원상복귀 하라니, 저항감이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것 하나. 그렇다고 펜데믹때 완전 편하고 좋기만 했던건 아니다. 식구들 삼시세끼 차리고, 챙기고, 치우는것도 얼마나

힘든 일이였던지,, 거기에 일은 일대로 정시에, 정시간동안 잘 맞춰서 내보내 줘야 하니까.)
정말 다시는 그런 바보같은 낭비하는 삶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내가 원하는게 뭘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그사이 조건도 좋고, 괜찮은 회사에서 2번의 인토뷰도 봤고, 한곳은 정말 퀀텀점프할만한 연봉도 달려 있었고, 몇번의 인터뷰 관문도 통과 했고, 마지막으로 트라이얼 프로잭트를 해보자고 했는데, 내가 스탑 했다. 
고민을 하지 않은건 아녔다.
트라이얼 프로젝트까지 통과하고 나면, 난 아이들이 원하는 액티비티도 더 시켜줄수 있을꺼고, 딸랑거리는 월급봉투에서 조금의 여유도 생길꺼고, 2층 카펫도 뜯어내고 마루로 깔고, 신랑이 총각때부터쓰던 아키아 서랍장도 좀 이쁘고 튼튼한걸로 바꿀수도 있었을 꺼다, 몇달 조금 더 모으면, 아마 꿈에 그리던 부엌 레노베이션도 할수 있을꺼고,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던 강아지도 사줄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좋은 장미빛? 결과가 기다릴수도 있었던 그 일을 스탑한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정말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니였다는것.

지금 당장은 좀 편할지 모르지만, 어짜피 또 2,3년이 지나고 나면 또 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할 내모습이 너무 뻔해 보여서.

 

그래서 소심하게나마 결심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지금 당장은 돈이 안될지라도, 몇년후에 또같은 고민의 웅덩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후회의 웅덩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내가 하고싶은 일을 시작해야 겠다고.

당연히 월급 더준다는곳의 기회를 내가 꺾어버리긴 했지만, 그 여유로워지는 월급봉투가, 2-3년 후에도 여전히 여유로와 질 보장이 없으므로, 아이들에게,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이제부턴 그냥 내가 하고싶었던걸 시작해 보기로 했다.

 

너무너무 귀여웠던,,, 내품을 너무 좋아했던 착하고 예쁜 아기는 13년이 지나, 13번째의 생일을 맞이 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많이 고맙다. 안그래도 체력이 저질인 엄마를 잘 맞춰주는것 같아서! 
아이 하나를 더 갖을까 말까를 4년을 고민하다 결단을 내리고 둘째를 임신했었다. 결국 첫째와 둘째는 5살의 나이차이가 생겼지만, 그렇게 터울 많은게 좋은점도 있고 좀 불편한?점도 있지만, 둘은 내 아이로 태어날 운명? 이였던것 같다. 생일도 하루차이로 첫째생일 다음날에 둘째가 태어났다. 생일이 연달아 있어서 좋은점이 너무 많다! :)
아직 초등 저학년인 막네는, 생일때가 되면 클라스 아이들에게 구디백을 나눠준다. (펜데믹 전에는 컵케잌같은 간단한 스넥거리를 나눠먹기도 했는데, 요즘엔 먹는건 안한다. 대신 작은 선물은 나눠줄수 있다.)  생일구디백에 넣을 테그에 넣을사진 촬영. 구디 종목은, 요즘 아이들에게 너무 핫한 팝잇!

앞서 주절 거렸든, 시간이 너무 아까운 나는, 한시간안에 클라스에줄 구디백 마치기 첼린지 시작!

우선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서, 문구를 넣어 작은 테그싸이즈로 만들어 프린트하고-잘라주고-끈 달아줄 구멍펀치!

 

구디백에 하나씩 넣어서 포장하는건 아이 시키고,

 

23명에게 나눠줄 구디백 완성!

 

이런것도 고학년, 한 4학년부터는 안했던것 같다.

저학년 (킨더, 1,2,3학년정도 때까지만 이런일이 좀 많고, 그다음부터는 아이들이 너무 cool해져서,,,ㅎㅎㅎ 이런건 촌스럽다 생각하는건지,,, ^^) 

아뭏든 올 10월 아이들이런저런일 미션도 마무리!! 

참,, 마지막 남은 할로윈이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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