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0/07)-노바백스-과학은 어떻게 세상을 구했는가 /세상을 구한 백신그리고 그 뒷 이야기-그레고리 주커만

2023. 10. 8. 07:43Bookstory

미래에 닥칠 코로나 19에 없어서는 안될 연구들의 태동

2012년 카리코의 상황은 어떠 했을까?

그녀도 여전히 펜실베니아에서 mRNA분자를 질병치료에 어떻게 활용할수 있을까 계속 연구 중이였다. 하지만 펜실베니아 대학에서는 항상 이방인 취급에, 인정받지 못하는 과학자로 낙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나마도 또 한번 강등되어 더 보잘것 없이 초라한 연구실로 쫒겨 가야 할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때 사힌의 회사에서 부대표로 일할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미국에서 독일로 카리코의 mRNA연구가 넘어가는 싯점이 된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사힌의 바이오엔텍은 mRNA로 암을 치료할 방법을, 미국 메사추세의 모더나 에서는 mRNA로 백신을 만들 방법을 연구하는데, 옥스퍼드의 에이드리언 힐과 보스톤의 댄 바로치가 거둔 놀라운 성과에 대해선 바이오엔텍의 사힌과 모더나의 방셀은 알지 못했다. (방셀도 사힌도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해 유전메시지를 인체에 보내는 백신기술엔 관심이 없었다.)
 
 
2012년의 댄 바로치의 상황은 또 어떠했을까?  
2012년 여름 바로치는 베스 이스라엘 디코니스에서 의료센터의 대표를 하게 된다. 이 센터는 바로치가 이끌던 백신기술 연구팀과 레트빈이 운영하던 바이러스 발병기전 연구팀을 통합해 만든것이다. (레트빈은 과거 바로치의 멘토였던 하버드의 교수 였지만, 제자의 연구 업적에 위협을 느껴 간혹 바보같은 태끌을 걸기도 했던 장본인이였다. 바로치도 바이올린연주실력이 상당했던것처럼 레트빈도 클라리넷실력이 출중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2년 5월 췌장암으로 사망했기의 그의 연구실 수장 자리는 새 인물로 채워져야 했었고 그 자리를 댄 바로치가 채운 것이다. )

2011년 존슨앤존슨이 네델란드의 크루셀을 매입한다. 
바로치도 자신의 백신연구를 위해서는 큰 제약회사와 같이 해야 했다. 크루셀처럼 말이다. 그러다 존슨앤존슨의 스토펠스앞에서 최근의 연구동향을 설명할 기회를 갖는다. 스토필스는 개인적으로 에이즈 백신을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였고, 바로치의 혈청형 Ad26기술에 냉철하면서도 우호적인 신뢰감을 보였다. 그의 연구는 더딘감이 없지 않았으나, 2015년 모기로 감염되는 지카 바이러스가 퍼질즈음에 뜻하지 않게 자신들의 연구가능성을 한번더 확인할수있는 계기를 갖는다. 지카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들어 보기로 한것인데 3가지의 방법을 택했다. 1. 불활성 지카 바이러스로 만든 백신, 2. 지카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중 일부를 유전공학 기술로 끼워넣은 플라스미드로 만든 백신. 3.바로치의 방식대로 지카바이러스 표면 단백질의 염기서열을 합성해 Ad26혈청형에 바이러스를 실어 전달하는 방식. 바로치의 방식은 효과적이였다. 존슨앤 존슨의 제약부분인 얀센 백신 사업부의 대표 요한 반 후프에게 이 사실을 사적으로 설명하고, 금새 지카 바이러스 백신 생산을 시작하기로 한다. 1년도 안걸려 백신을 만들어낸 초유의 기록 이였고 Ad26 바이러스 백터 기술로 HIV처럼 인체 면역계를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 어느정도 얌전한 바이러스에게 사용하면 효과가 크다는걸 알아낸 중요한 계기였다.
 
2017년말 즈음에 댄 바로치는 자신의 Ad26백신이 1회 접종만으로도 효과가 있을것이라 생각했고, 힐과 길버트는 침펜치의 아데노바이러스를 활용하는 고유한 기술에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아직 확정적으로 신뢰를 받을만한 검토단계까지 간것은 아니였다. 언젠가 인류를 위협할만한 병원체가 창궐했을때 사용해볼만한 방법임에는 틀림 없었다.
 
2005년 메릴렌드에 있던 노바백스는 급격히 떨어진 매출로 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매출 인하는 황당한 이유 에서 였다. 갱년기 여성들의 홍조를 덜어주는 크림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실수 아닌 실수로 얼굴에 발라본 여성이 주름개선에 큰 효과를 보고 매출이 급격히 올라갔던적이 있었다. (노바백스는 여성건강제품 개발도 하면서 이름에서 알수있듯 백신계발도 하는곳이였다.) 나중에 이것을 좀더 과학적으로 진실여부를 알아보는중에 오히려 발암물질이 있네 없네,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고, 결국 매출은 극감 했던것. 이때 라울 싱비(Rahul Singhvi)가 최고 경영자로 오면서 그의 고민은 커저만 갔다. 이때 노바백스에 오래 있었던 게일스미스에게 회사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털어 놓는다.

 

게일은 앞에서도 소개 했듯이, 곤충연구로 10년전즈음 프랭크 볼보비츠와 함께 에이즈백신을 연구 했었던 적이있었던 인물. 마이크로제네시스를 계승한 업체인 프로틴 사이언스에서 바큘로바이러스 시스템으로 독감 백신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던경력이 있는 사람 이였고, 그가 노바백스에 합류한건 1년 전 즈음인 2004년 이였다. 그는 자신의 기술로 새로운 질병과 대 유행병에 대응할수 있는 백신을 만들수 있다고 굳게 자신했다. 싱비는 그런 게일의 기술에 노바백스의 미래를 걸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결정은 아주 영리한 결과였음을 증명한다. 
바이러스의 핵심 단백질과 유사한 분자나 인자를 만들어 몸에 투여해 인체의 면역계가 인식하게 하고 위험징후가 보일때 싸우도록 가르치겠다는 방식은 기존의 방식인데 게일은 거기에 인체에는 무해한 그러면서 인위적이여서 감염성의 위험은 전혀없는 바이러스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만든 물질을 넣는다는게 달랐다. (여기서 '분자나 인자를 만.들.어' 투여 한다는것과 '인위적'으로 만든다는게 서로 어떤차이가 있는건진 모르겠으나.) 이 부분에서 이해 안가는 부분이긴 하지만, '게일의 것이 기존과 다른것' 이라 해놓고는, '이러한 재조합 단백질은 모든 의약품에 사용되어 있었고, 머크에서도 이미 인유두종바이러스 HPV백신에 재조함 단백질을 사용했다'고 저술하고 있다. 아뭏튼 게일은 다른 바이러스 백신도 이와 비슷하게 만들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페럿의 조류 인플레인자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백신을 만들어 효과를 보고 논문으로도 제출 한다. 이 연구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협력으로 진행되었고 인체독감 백신도 만들수 있다는 가능성 제기와 함께 정부기관으로부터 20만달러의 연구지원금도 받았다. 노바백스의 다른연구사업부를 모두합친것보다 많은 액수 였고 얼마후 독감백신으로 한국의 제약회사와 1700만 달러의 라이센스 계약도 체결한다. 그외에도 7000만 달러의 투자도 모으며 힘들었던 노바백스의 연구비 금고는 넉넉해 졌다.
2011년이 되어서는 스탠리 어크가 노바백스의 경영자로 오고, 백신계발에 진심이였던 그레고리 글렌을 연구개발부 총괄자로 채용한다. 어크와 글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스미스의 기술로 HIV, 사스, 돼지독감, 에볼라, 종동기호흡기증후근등 다양한 질병백신을 개발한다. 
하지만 노바백스에게도 어려움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규제에 발목을 잡히거나, 유행병이 사그라져 최단 임상실험을 못하고 불발탈이 되어버리는 연구도 있었고, 백신이 눈에띄게 큰 효과를 안보이는 경우등등 그 변수는 너무도 다양했다. 어크는 연구진의 사기를 북돋아주려고 항상노력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신이 갖고있던 농장의 동물들을 보살피는 것에서도 큰 위안을 받는 그는 이상적인 리더였던것 같다. 연구가 실패해도, 실적이 저조해도, 항상 팀을 응원했다.
2014년 백신으로 활성화되는 면역 증강제를 만들던 스웨덴 업체를 인수한것도 노바백스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증강제와 바이러스 단백질과 섞은후 노입자로 만들어 투여하는 방식이였다. 기존의 mRNA백신이나 아데노바이러스처럼 유전물질을 체내로 도입해 체내에서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것과는 다른방식 이였다. 그리고 효과도 좋고 만들기도 쉬웠다.
2015년 RSV백신계발에 큰 관심을 주목받은 노바백스는 또한번 주가 상승의 기쁨도 누리지만, 
2016년 최종임상의 실망적인 결과가 확인되자 주가도 하락하고(물론 삼상의 결과가 않좋았다.) 회사는 3/1의 직원을 해고할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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